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꽃집소녀 전대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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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 시들었네."

내어 준 차에 그 동네에서 제법 유명하다는 토스트를 곁들어 먹던 중에 그녀는 부지런히 손을 움직이기 시작했다.
오사카 여행에서 사왔다던 귀여운 꽃병에서 시든 잎을 떼어내고 물을 갈아주고. 갑작스레 시작된 그녀의 손을 물끄러미 바라봤다.




전대리라는 애칭으로 주로 부르는 그녀는 내 대학후배이자,
회사 후배이자 선배(회사 입사는 내가 먼저, 후에 퇴사했다가 다시 계약직으로 들어갔기에)였고,
적절한 조언을 던져주는 꽤 괜찮은 친구이기도 하다.


"그냥 우리 집에 가요."

우리는 부암동에 있는 백사실 계곡을 가려고 했지만, 길을 한번 잃고 의외로 멀었기에 중도 포기했다.
햇살이 꽤 뜨겁게 내리쬐는 날에 걸어서 뭣하리란 생각으로 선택한 대안은 늘 한 번쯤 방문하고 싶었던 그녀의 집.
자연산 깨소금이 무한으로 만들어진다는 신혼집이었다.




그녀의 집은 효자동이다. 이 동네를 직접 방문해보고 느낀 것은 언제고 여기에 살고 싶다는 것.
골목다운 느낌이 남겨져 있는 것도 느릿느릿 걸어서 돌아다니기에 꽤 괜찮은 위치라는 것도 마음에 들었지만,
"어디 가십니까"하고 물어오는 사복경찰들이 제일 마음에 들었다. (매우 안전할 것 같은 지역이라서.)




"언제 이사 가야 할지 모르는걸요."

그녀의 말대로라면 천정부지로 치솟는 (그 놈의)전세값 때문에 계약이 끝나면 이 집을 떠나야 할지도 모른다는 것이지만,
어쨌든 그건 잠시 내려놓고 이 깨소금 넘치는 집을 조금 더 예찬할 필요가 있다고 나는 느꼈다.
오후 4시쯤 되자 작은 쪽문 사이로 들어오는 그 햇살이 너무 따스해 평소 가방 속에만 박아두던 카메라를 꺼낼 수밖에 없었던 것.
그녀의 손을 스친 작은 식물들은 다시 생기를 띄며 때마침 내리쬐는 햇살과 함께 싱싱하고 파릇파릇하게 빛이 났다.




꽃집소녀라고 부르는 건 이 집에 놓인 꽃과 화분에 담긴 애정만큼 그에 대한 관심이 많아서다.
최근엔 플라워 레슨까지 받기 시작했으니, 가끔 페이스북으로 그녀가 만든 꽃다발이나 꽃병을 보며 
내가 결혼을 하면 부케는 네가 만들어야 한다고 미리 줄을 서 두었다.  




간식을 먹다가 시작된 부지런한 손은 집안 전체에 있는 식물 하나하나에 옮겨지고
테이블 위에 올려져 있던, 창문 가에 놓여 있던 그 모든 식물 하나하나에 활기를 불어넣기 시작했다.
그동안 회사 일로 방치 아닌 방치를 했을지도 모르기에 오늘은 다 제대로 빛을 내겠다는 그런 마음으로.

그리고 난 그 옆에서 열심히 셔터를 누르며 관찰했다. 조그마한 손이 부지런히도 움직이는 모습을.




"다음엔 독일에 가고 싶어요."

그렇게 식물과의 시간(?)이 끝나고, 다시 제 자리로 돌아온 그녀가 내가 좋아할 것이라며 보여준 건
신혼여행으로 간 프라하에서 사온 목각 오르골.
체코에서 산 거지만, 만든 건 독일이라며 다음엔 독일에 가 보고 싶단다.
그녀를 좋아하는 이유는 묘하게 잘 맞는 취향 때문인데, 이 오르골은 그 예상대로 내 맘에도 쏙 들었다.

오르골의 손잡이를 잡고 돌리면 웨딩송과 함께 두 손 맞잡은 신랑 신부가 뱅글뱅글 돌기 시작한다. 
그 모습이 결혼한 지 갓 1년이 된 그들 부부와 같아서 피식하고 웃게 한다.
햇살 내리 쬐는 이 오후의 따스함처럼 늘 그런 느낌으로 곁에 있어주었음, 그런 느낌으로 살았으면 하는 바람이다.


덧1_ 이 글을 보는 전대리의 반응 : 손 못생겼다, 내 얼굴 이상해요, 집 지저분한데... 등.

덧2_ 어쩌다 이런 포스팅을 하게 되었는지는 모르겠지만, 요즘들어 내 주변의 사람들을 보다 보면
씨앗을 뿌리고 열매를 맺는 걸로 비유하자면 이들이 나에겐 열매가 아닌가란 생각이 들기 시작했다.
얼마나 더 많은 사람을 관찰하고 이야기하게 될지는 모르겠지만, 어쨌든 그들은 나에게 참 고마운 존재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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