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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편한 그들, 로버트 카파와 마리오 테스티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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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편한 그들, 로버트 카파와 마리오 테스티노
세계 최고 사진작가의 전시회를 달리 보다.


이젠 좀 이야기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해 본다.
두 전시회 모두 끝났으니 보러 가려는 분들께 무언가 방해(?)가 될 만큼의 이야기가 되지 않을 것이기에.
무슨 거창한 이야기를 하려고 하는 건 아니고 그냥 내가 이 전시회를 보고 나서 느낀 기분에 관한 이야기를 
그냥 두서없이 풀어놓기엔 전시가 진행되는 상황에서는 조금 미안했달까. 

전시회를 보면서 그런 생각을 했다.
불편해. 

어디서부터 비롯된 것인지 알아내기까지는 조금 시간이 걸렸지만,
분명 시대도 다르고 장르도 다른 이 두 작가의 사진 작품을 보면서 느낀 건 묘한 불편함이었기 때문이다.
그저 좋다고 감탄하기엔 마음에 걸렸던 알 수 없는 감정, 나는 그들이 불편했다.



사진전 하나, 로버트 카파 100주년 사진전 


로버트 카파 탄생 100주년을 기념하면서 열린 이 사진전은 세종문화회관 미술관 본관에서 이루어졌다.
경향신문의 주최였던지라 사이트에서 받은 40% 할인권으로 실제 전시가격보다는 저렴하게 티켓을 구입했다.
이후에 같은 세종문화회관에서 열린 라이프 전까지 관람을 마쳤는데 비교하자면 전시공간은 카파전이 훨씬 낫다.
(나중에 라이프전의 리뷰를 쓰며 그 짜증나는 동선에 대해 이야기를 하지 않을까 싶다.)




로버트 카파를 가장 잘 표현하는 말은 전쟁 보도 사진 작가
41세의 짧은 삶을 사는 동안 다섯 곳의 전쟁터의 모습을 담은 사진을 남겼고
결국 그가 결국 죽음을 맞이한 것도 베트남의 호치민군과 프랑스군이 싸우던 전쟁터였다. 

투철한 기자정신을 의미하는 카파이즘(Capaism)의 어원이 그에서부터 시작된 것만 보더라도
그가 얼마나 전쟁터에서 날라오는 총알을 두려워하지 않고 사진을 찍었는지 알 수 있을 터.




먼저 세상을 떠난 첫사랑 게르다 타로를 잊지 못해 여배우 잉글리드 버그만의 청혼을 거절한 이야기는 
그의 이름을 또 다른 이유로 유명하게 했고 그가 죽는 순간까지도 게르다 타로의 사진을 간직하고 있었다는 이야기는
로맨티스트로 불리게 했지만, 그는 어쨌든 전쟁의 참혹함을 그대로 잘 찍어낸 사진작가였다.




전시회 사진은 100% 전쟁의 이야기만을 다룬 것은 아니다.
그의 이름 난 절친들 어니스트 헤밍웨이, 앙리 마티스, 파블로 피카소의 사진이나 평범한 파티 사진도 있었으니.
그러나 역시 기억에 남는 건 그가 남긴 전쟁과 관련된 사진들이다.

공습을 피해 도망치는 여인의 불안한 눈빛, 독일군의 총을 맞고 죽은 미군 병사의 늘어진 몸, 
어린 자식의 죽음 앞에 분노하는 여인들의 일그러진 얼굴, 노르망디 상륙작전을 진행 중인 순간의 병사의 긴장된 눈빛.
카파의 사진은 그 모든 것들을 고스란히 한 장의 사진에 담아 낸다.

내가 불편하다고 생각했던 이유는 그 장면 하나하나에서 느껴지는 피사체가 느끼는 감정이 사진에서 느껴지기 때문이었을지도.
늘 행복하고 즐거운 것만 보고 싶은 나의 마음은 인간의 가장 부정적인 감정들이 담긴 사진 앞에 서니 불편할 수밖에 없었다.
그는 그런 감정을 절로 생기게 할 정도로 리얼하게 담아냈지만, 사진을 찍히는 그들의 감정은 어땠을까란 의문도 생겼다.



어느 공화군 병사의 죽음(1936)


아직도 이 사진에 대해서 말은 많다.
그의 연인 게르다 타로가 찍었다는 설도 있고 조작이란 이야기도 있고.

그러나 그런 이야기보다도 내가 궁금했던 건 이게 진실이라면 사진을 찍는 순간에 느꼈을 피사체와 사진 작가의 감정이다.
자신이 죽는다는 걸 느끼는 병사와 그 순간을 포착한 사진 작가 사이에서 어떤 감정이 충돌했을지에 대한 의문.
그리고 그 순간을 그대로 담아내 다른 이들에게 전달하려고 한 것은 무엇이었을까에 대한 의문.
단순히 사진들을 보며 '멋지다', '잘 찍는다'로 감탄하는 일보다도 
불편할 수밖에 없는 질문들이 전시내내 따라다녀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도 계속 생각한 것 같았다. 
답이 없는 문제에 대한 고민.


보도 사진 작가들은 그런 현장의 사진을 찍을 때 이 이야기를 전달해야 한다는 사명감을 가진다고 한다.
그리고 당연하게 문제 제기 되는 것이 '윤리'와 관련된 것.
카파 전을 보면서 느낀 불편한 감정은 그들의 사명감과 윤리에 대해서 고민할 수밖에 없었기 때문이다.
과연 인간의 가장 고통스런 순간을 사진으로 담아낸다는 것이 사명감으로 이해될 수 있는 부분인가,
그로 인해 전쟁의 참혹함을 이야기할 수 있지만, 그것이 맞는 것인가.
글로 쓰려니 이건 더 설명하기 어렵다.


어쨌든 시작은 가볍게 사진 전시를 보자는 기분으로 시작했는데 결국 머리만 복잡해졌다.
그리고 우쿠는 영화 '뱅뱅클럽'을 추천해 주면서 숙제를 하나 더 안겨주었다. 
아, 모르겠다.



사진전 둘, 마리오 테스티노 은밀한 시선


이 전시는 예술의전당 한가람 미술관에서 열린 것으로 세계 최고의 패션 사진작가로 불리는 마리오 테스티노의 첫 국내전시.
CJ 소셜보드 활동을 하면서 얻게 된 전시인지라 실제로 구매한 것은 아닌 초대권이다.(감사합니다!)
요 근래에 본 사진 전시회 중에서 공간의 활용이나 동선은 정말 제일 마음에 들었던 전시회였다. 
(사진 전시회는 이래야 하지 않겠나, 라이프전!! 버럭버럭!!)




패션쇼의 런웨이를 걷는 듯한 느낌으로 만들어 놓은 전시장 외부에 서니 야상점퍼 하나 대충 챙겨입고 온 것이 미안할 지경.
멀티비전으로는 다양한 나라의 패션 관련 유명인들의 축하메시지가 나오고 있어서
세계 최고 패션작가란 그의 타이틀을 다시금 확인시켜주는 기분이었다.




사실 전시를 보러 가면서도 그에 대해서 아는 것은 없었다.
그의 이름마저도 낯설게 느껴지기까지 했는데 막상 그가 찍은 사진들을 보니 알만한 것들이 많더라는.
유명 배우나 모델과의 촬영이 많았던 터라 사진을 보면서 그 모델 이름을 보는 것 또한 쏠쏠한 재미였다.

기네스펠트로와 특히 친하다고 하더니 우아한 그녀의 가장 개구진 표정을 잡아내기도 했고,
브래드피트와 헤어진 후 많은 이들의 위로에 가장 아름다운 모습으로 괜찮다고 보여준 제니퍼 애니스톤,
그와의 작업이 마음에 들어 다음번 작업에 그를 다시 찾았다는 마돈나까지.
사진전에서는 그가 찍은 유명인들의 사진에 관련된 뒷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다.
(참고로 이건 3,000원을 내고 라디오 가이드를 통해서.)




전시는 하나하나가 멋진 색채와 구도, 그리고 모델로 인해 아름다웠다.
패션을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충분히 감동을 받을 수 있는 전시가 아니던가.
그렇지만 내겐 역시 몇 가지 의문을 남기면서 불편하단 생각을 할 수밖에 없었으니
이쯤 되면 모든 사진 전시에 의문과 불만을 가지고 살아가는 건 아닌가란 의심도 든다. ㅎ

마리오 테스티노의 사진에서는 아름다운 그와 그녀들의 가장 아름다운 얼굴만 보인다.
그것이 상업사진의 특징이겠지만, 멋있는 걸 더 멋있게 아름다운 것을 더 아름답게 이외에 무얼 느끼긴 어려웠다.
사진이 가진 의미를 이야기하고자 하는 것은 아니지만, 그래도.

의미를 가지고 찍은 사진이더라도 그 의미를 이해하기는 어려웠다. 
마치 그 의미는 나만 모르는 것 같게 느껴져서 불편할 수밖에 없는 그런 생각.
이렇게 멋진 작품을 보면서 아무 생각이 들지 않는다면 그건 나만 이상한 것이란 감정을 가지게 되기에.
그래서 라디오 가이드북에서 흘러나오는 설명을 들으면서도 같이 공감하기는 어려웠다.




여장을 하고 빨간 립스틱을 바르는 배우도 아기를 들고 있는 웃는 모델도 식육점 모델로 서늘한 표정의 모델도
하나같이 멋있고 예쁘지만, 그래서 이건 무얼 위해 찍은거지란 생각을 하게 만든다.
그런 생각은 필요없고 그저 보이는 그대로를 느끼면 된다고 생각할 수도 있겠지만,
공감하기엔 '셀러브리티'라는 말처럼 멀게만 느껴지고 현실적이면서도 현실적이지 않은 그림처럼 느껴졌다.


로버트 카파전과 마리오 테스티노 전을 연타로 보고 났더니 불편한 감정이 더 섞였던 것 같다.
현실과 비현실, 행복과 불행, 기쁨과 슬픔, 아름다움과 추함을 동시에 본다는 것은 이 얼마나 불편한지.
사진전은 보는 것에만 그치는 것이 아니라 그 안의 의미까지 생각하게 하다 보니 두 전시 모두 묘한 불편함을 남겼다.

그들의 사진에 대한 평가를 하자는 건 아니다. 그걸 내가 논할 자격도 없고. 
다만 난 내 '느낌'을 이야기 하고 싶어 글을 쓰기 시작했는데 그 감정을 설명하기 힘들어서 글쓰기마저도 불편해져 버렸다.
나중에 이 글을 다시 보면 그땐 더 불편하겠지. 에라이. 

어쨌든 사진전은 너무 좋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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