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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은 모른다, 호텔 하우스키핑의 세계를 :: 특집 호텔스토리 1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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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말이 되면 호텔도 사람들이 늘어난다. 호텔에서 어쩌다가 파티를 하는 것이 자연스럽게 되었는지 모르겠지만, 
떠들썩하고 기분 좋은 그 순간을 기억하고 싶어서 그런 것은 아닐까란 생각이 들기도.
그래서 준비한 (오랜만에 업데이트 되는) 일퍼센트매거진 12월 특집(?), 호텔스토리. 
당신이 그다지 모르고 관심 없어 할 만한 호텔과 관련된 이야기를 준비했다. 대략 3부작으로.



당신은 모른다, 호텔 하우스키핑의 세계를
특집 호텔스토리 1편 어느 외국인 노동자의 회고록

1년 간 호주워킹홀리데이를 하면서 내가 경험한 건 상당히 많지만, 그중에 하나가 4개월가량 일해 본 호텔 하우스키핑이다.
왜 그런 일을 했느냐고 묻는다면 '영어도 안 되는데 몸이라도 써야지'란 대답밖에 할 수 없으니 더 이상의 이유는 생략.

지금 생각해도 언제 다시 그런 일을 할 수 있을까 이것도 추억이라며 웃을 수 있겠지만, 정말 힘든 일이었다.
아마 '호텔을 이용해 본 적'은 많아도 '호텔은 청소해 본 적'은 거의 없을 이 글을 읽는 사람들이라면
어머! 하고 어떤 것일까 신기해할지도 모르겠지만, 오늘도 어느 호텔에서 눈물 젖은 블리치(소독약)를 칙칙 뿌리고 있을
우리의 하우스키핑 동료들을 생각하니 내 마음이..칙칙하다.



호주 워홀러, 하우스키핑은 어떻게 시작하게 되었나..


외쿡 언니와 함께하는 비디오 트레이닝


호주에서 하우스키핑을 어떻게 시작하느냐. 한국에서 일자리 구하는 것과 상당히 비슷하다.
열심히 여기저기에 레쥬메라 불리는 이력서를 찔러 넣고 연락이 오기를 기다리고, 오지 않아 좌절하고 다시 넣고..
그걸 한 몇 번 하다 보면 드디어 연락이 오게 되는데 나 같은 경우는 이런 호텔일과 관련된 에이전시부터 연락이 왔다.

근데 그때부터가 고비다. 일단 면접은 보지만, 100% 영어란 말이지.
그때부터 멘붕과 함께 무조건 나는 이 일을 할 수 있다란 자세로 돌입하여 안되는 영어를 다 끄집어 내야 한다.

"아이캔 두잇, 아임 베리 하드워커!"



 다치지 않고 청소하는 법


생각해보면 사실 그렇게 잘하는 영어도 아닌데 일을 하지 않으면 굶어 죽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할 수 있다고 외쳤던 것 같다.
그렇게 에이전시는 나를 고용했고 몇 가지 서류에 사인하고 비디오 트레이닝 과정을 거치고 나서야 호텔 일을 시작하게 되었다.



미션 임파서블, 20분 안에 청소를 끝내라!


 이 방과 싱크대, 화장실을 치우는 데 주어지는 시간은 20분


지금 생각해도 이건 좀 불가능한 일이 아닌가 싶다.
내가 일을 한 멜버른에 위치한 호텔은 별이 3개 정도 되는 비즈니스급의 호텔이라 그다지 크지는 않았다.
사진에 보이는 크기의 방과 입구 쪽에 위치한 싱크대가 놓인 작은 부엌, 그리고 화장실 이게 다인데
문제는 체크아웃방을 청소하는데 주어지는 시간은 딱 20분이란 사실이다. 20분.



 겨울이 되자 침대 커버가 이불형태로 바뀌고 이는 곧 고생이란 말

 늘 많은 생각을 하게 하는 화장실 청소


나름 열심히 하고 매일 어떻게 하면 조금 더 빨리 끝낼 수 있을까를 고심하며 청소했건만 늘 정해진 시간을 넘곤했다.
그리고 오버한 시간은 '시간 외 수당'으로 쳐 주지 않았기에 인도 슈퍼바이저의 '잔소리'가 늘 따라다니곤 했다.

사용한 그릇들은 싱크대에 모아서 물에 담가놓고, 두 곳에 배치된 쓰레기통의 쓰레기를 비운다.
사용한 침대와 배게 커버, 화장실 수건들과 같이 들고 나오고 여기저기 먼지를 닦아준다.
침대와 베개 커버를 새로 씌우고 난 뒤 화장실을 청소한다. 설거지를 마치고 필요한 물건들을 보충한 후 청소기를 돌린다.

대략 순서는 사람마다 다르지만 해야 할 일은 이 정도로 이 모든 과정을 20분에 끝내는 건 쉬운 일이 아니었다.



하우스키핑을 하기 전에 해야할 것들


 일을 마치고 온 후의 사무실은 엉망진창


호텔에 출근하면 일단 가장 먼저 해야 할 것은 사무실에서 소독약 3종류와 간단한 청소도구를 챙기는 것.
청소할 때 쓰는 소독약은 크게 투명색(찌든 때를 닦는 용), 하늘색(유리 닦거나 먼지 닦 는용), 초록색(방향제)인데
흔히 블리치라고 불리는 투명한 액체는 일종의 락스 역할이라 이것 때문에 손이 많이 상한다.



 몇 개월을 같이 고생했던 트롤리


그리고 난 후 트롤리를 끌고 가서 방에 교체할 침대, 배게 커버 및 다양한 크기의 수건과 호텔 비품들을 챙기는데
일을 하다가 중간에 떨어지면 다시 가지러 가는 게 일이다 보니 최대한 많이 그 날 방 개수에 맞추어 채워넣지만,
그만큼 트롤리가 무거워져서 늘 낑낑거리며 고생했던 기억이..



 사진에 보이는 것보다 훨씬 크고 무겁다


이 너저분한 트롤리도 나름대로 경쟁이 치열했으니 자기가 채워 놓은 트롤리를 누군가가 사용하면 곤란해지곤 했다.
호텔에서 십수 년을 일한 이모님들의 트롤리는 함부로 건들면 안 되고 신입은 자신의 트롤리를 갖기까진 시간이 걸렸지만,
난 운이 좋았던 것인지 몇 일 만에 사용하지 않는 제법 괜찮은 나만의 트롤리를 갖게 되었다.



 요건 문을 고정하기 위해 썼던 나무작대기

참 이게 뭐라고 이걸 못 가져서 안달인지.. 싶기도 했지만, 그때는 이 트롤리 하나에 울고 웃었던 듯.
자기 트롤리가 없으면 출근할 때마다 비어있는 트롤리를 찾으러 다니면서 시간을 낭비해야 했기 때문에
트롤리 한구석에 이름도 적어놓고 남들보다 일찍 출근해서 트롤리 사수(?)를 하기도 했다.



호주 하우스키핑 시급은?


 하루의 기분을 쥐락펴락했던 시프트(shift)


트롤리를 다 채우고 방 청소를 시작하기 전에 받는 것이 그 날의 치워야 할 방의 표시가 있는 시프트라고 불리는 종이다.
위의 사진에 보면 핑크색 형광펜이 체크아웃(Check out)한 방이고 나머지는 아직 손님이 있는 방(Stay)을 의미한다. 
그리고 파란색으로 그어놓은 건 특별히 오래 머무는 손님이니 수건이나 비품들을 더 신경 써서 채워 넣어야 함을 말한다.


이날은 오전 8시부터 오후 3시 30분까지 30분의 점심시간을 제외하고 총 7시간을 일하는 꽤 빡신 하루였다.
체크아웃방이 12개, 스테이방이 12개로 이런 날은 그냥 점심 먹는 것도 패스하고 일하느라 바빴던 것 같다.



 2주 동안의 일한 시간을 기록


내가 근무했던 호텔은 2주에 한 번씩 주급이 나오는 시스템으로 출퇴근 시간을 손으로 기록하는 방식이었는데
기본적으로 주 7일 일하는 것은 호주 법상 금지되어 있었고 나름 열심히 일한다고 주 6일씩 일하던 때도 있었다.


평일 시급은 16달러, 토요일은 그보다 조금 더 비싼 19달러, 일요일이나 공휴일은 30달러에 가까운 시급이었다.
호주는 평일이 아닌 주말이나 공휴일, 혹은 저녁 시간에 일하면 시급이 더 쎘기 때문에 그때만하면 좋았겠지만,
주말은 늘 일하는 사람이 정해져 있어서 나는 가끔 대타(?)로 일을 하거나 했다.

근데 공휴일에 일하는 건 정말 힘들었다. 시급이 쎈 만큼 맡아야 하는 방이 너무 많아 늘 제시간을 넘어 버려서
나중에 일을 그만둘 때 즈음엔 호텔에서 일해 달라고 요청을 해도 거절할 때가 많아졌다.
체력이 나빠진 것도 있었고 호주를 떠나기 전에 더 많이 놀아야겠단 생각이 들기도 했기 때문이다.



 그만두는 한국 친구의 강력한 욕 한방(!)


오로지 육체노동이기 때문에 정말 힘들었다. 그리고 내 예상과는 달리 나는 참 일을 못하는 편이었다. 
같이 일을 시작한 다른 외국인들이 그만둘 때도 한국인의 끈기(?)와 돈을 벌어야 한다는 생각에 열심히 일했던 것 같다. 
경력이 오래된 이모님들(이모님들은 베트남에서 오래 전에 오셔서 이 호텔에서만 십수 년을 일하셨다)에게 노하우를 묻기도 하고
빠르게 일하는 한국 친구들에게 요령(?)을 배우기도 했지만, 난 늘 시간을 제때 지키지 못해서 스트레스였다.

인도출신 슈퍼바이저들의 잔소리를 들으며 상했던 기분은 한국인 동료들의 찰진 욕(?)으로 마음을 달래가며
그 고된 호텔 일을 버티고 익혀가고 돈을 벌며 몇 개월을 일했다.



고맙다는 메시지는 팁보다 강력하다


힘이 되는 고맙단 메시지


호텔 일을 하다 보면 팁을 받을 때도 있다. (사실 호주는 다른 서양의 국가와 달린 팁이 있는 나라가 아니다.)
이렇게 남겨놓은 팁과 간단한 메시지를 남겨 좋은 걸 발견하면 이 고된 일 위로받는 기분이 들었다.
남은 동전, 5달러짜리 지폐, 자신의 나라 동전을 올려 두고 간 경우가 보통 제일 많고
머물고 있는 방을 치우고 있을 때 할아버지가 건네준 5달러도 기억에 남는다. 그 날은 크리스마스 이브였다.




그럼 호텔에서 팁 받는 것만 기쁜 일인가? 사실 난 팁도 팁이지만, 깨끗하게 쓴 방을 볼 때도 기뻤다.
청소하는 시간이 줄어든다는 것이었기에. 할 일이 태산 같을 땐 팁보다 오히려 더 기쁠 때도 있었다.


몇 개월간의 경험으로 봤을 때 중국인 관광객, 서양인 남성 3명이 한 방을 쓸 때,
어린아이와 함께한 부부가 쓰는 방이 확률적으로 지저분하고 출장 온 비즈니스맨이 홀로 방을 쓰는 경우가 가장 깨끗했다.
찻잎이 떨어져 있으면 중국이고 신라면이 나오면 한국인 경우도. ㅎㅎ


[막간 에피소드, 하우스키핑을 하는 동안 기억에 남는 일들]

1. 할아버지 죄송해요;ㅁ;
체크아웃방을 청소하고 나서 몇 개 비품을 빠트린 게 기억이 나서 채워 넣으러 갔는데 그 사이에 이미 체크인을..노크를 하고 문을 열었는데 할아버지가 옷을 싹 벗고 있다가 놀래서 의자 뒤로 숨으셨다. 쏘리를 외치고 쏜살같이 도망갔다. 그분은 곧 복도에 나와서 무슨 일이냐며 날 찾았지만, 난 이미 도망간 직후..


2. 친구들 미안해요;ㅁ;
스테이방을 청소할 땐 화장실부터. 때마침 온 전화를 받으면서 청소하면서 나오는데 방에 사람이 자고 있었다. 조용히 그리고 쏜살같이 도망. 


3. 내 인생 최악의 방
아직도 호텔 청소하면서 가장 기억에 나는 방은 운동부 소년 3명이 같이 묵었던 방. 체크아웃으로 할당받아 문을 열었다가 곧장 닫고 정말 내 방인지 다시 확인했다. 커튼 봉에 매달려서 박살을 내놓고, 가구 위치는 다 바꾸어놓은 후 쓰레기는 여기저기에 투척, 누텔라를 침대에 발라놨던. 20분 안에 치워야 하는 그 방을 장장 1시간 30분에 걸쳐 치워야 했다.


4. 일 그만둘까?
늘 잔소리를 하는 인도 슈바 1, 2, 3. 그중에서도 최악은 2였는데 일을 늦게 한다고 청소하고 있는 방까지 쫓아와서 한마디를 해서 결국 쌓이고 쌓인 스트레스가 참다 폭발해서 따졌다. 내가 일을 더 한다고 돈을 더 달라고 하든? 내가 그거 때문에 그만둔다고 한 적 있든? 진짜 그만둘까? 앙? 그 날 평소엔 되지도 않던 영어가 방언 터지듯 터졌고 그 슈퍼바이저는 내게 사과했다. 


5. 대단한 그녀
사실 호텔 일이 쉬운 건 아니다 보니까 그만두는 사람도 많다. 그중 최고는 일하다가 화가 난 나머지 자신이 할당받은 시간이 되자 치우던 방을 그냥 그대로 두고 간 사람이었다. 그리고 다음 날 그만둔다고 왔던. 모두가 대단하다고 생각했는데 몇 달 뒤 그녀는 다시 일하기 위해 찾아왔다. 이래저래 대단했다.



 가끔 나도 팁을 남기곤..

하우스키핑 생활을 끝내고 생긴 버릇이 있다면 어느 호텔에 가도 절대 지저분하게 사용하지 않는다는 거다.
한동안은 호텔에 가서 버릇을 못 버리고 침대까지 싹 정리하고 오기도 했고
경험 덕에 어떻게 하면 청소할 때 더 편한지도 알다 보니 도움 아닌 도움을 주고 올 때도 있었다.
매번 놓고 갈 순 없지만, 팁과 메시지를 적어놓고 오는 경우도 있었고.


물론 자기가 돈을 내고 사용하는 것이고 하우스키퍼들은 당연히 청소하는 게 직업인 것도 맞지만,
돈을 냈기 때문에 막 써도 된다든가 더럽게 사용해도 된다는 생각은 제발 버려줬으면 좋겠다.
그 누군가는 그 일을 위해서 소독약에 손을 버려가면서 일을 하기도 하고 점심을 거를 때도 있으니까.
이 글을 읽고 호텔 하우스키핑의 세계를 알게 된 분들이라면 이제 조금만 더 깨끗하게 써줬으면 좋겠다는
작은 바람을 담아 지난 날을 정리해 보았다. 아...눈물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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