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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라마같은 뒷골목의 마법 :: 멜버른 호시어레인 Hosier L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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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곳은 드라마가 만들어낸 마법이 있다.
한국에 어그부츠 열풍을 불고 왔던 드라마이기도 한 '미안하다 사랑한다'. 오늘 찾아간 곳의 설명하기 위해서는 그 드라마의 이야기가 절대적으로 빠질 수가 없다. 임수정과 소지섭이 손잡고 만났던 그 골목, 그래피티가 가득 차 있는 벽과 그곳에서 시작된 운명적 사랑. 드라마 덕분인지 '미사거리'로 불리며 이름을 알리게 된 이 골목의 정식 명칭은 'Hosier La 호시어 레인'이다. 




시티를 몇 번이고 걸어 다니면서 지나쳤던 곳임에도 이곳이 그곳일 줄은 정말 몰랐다. 멜버른에서 머물 때 조금이라도 유명한 곳에 찾아가보겠다는 생각으로 스마트폰 지도를 뒤져가며 찾아왔는데 늘 지나쳤던 그 골목이 드라마의 배경지였다니 등잔 밑이 어둡다는 것은 이럴 때 쓰는 말이 아닌가 싶다.




찾는 방법은 어렵지 않다. 나는 반대쪽에서 들어가는 바람에 헤맸을 뿐이지 플린더스역 건너편에서 ACMI(Australian Centre For The Moving Image) 방향으로 큰 길을 따라서 오면 'Movida'라는 스패니쉬 음식점이 있는 곳이 바로 그 골목. 그래도 찾기 어렵다면 골목 중에 사람들이 유난히 많아 보이는 골목이 바로 그곳이다.




골목 자체는 그렇게 길지 않다. 그래서 많은 기대를 하면 골목의 길이만큼이나 실망할 수밖에 없다. 멋진 소지섭과 예쁜 임수정 대신 벽화를 찍으러 몰려든 관광객들이 있을 뿐. 그만큼 이곳은 관광지로 이름난 곳이지만, 이곳을 보기 위해 오기보다는 시티 구경을 하는 길에 들린다는 마음으로 오는 것이 좋다. 플린더스역과 페더레이션 광장, 세인트폴 성당이 바로 근처에 있으니 말이다.




표지판 뒤에도 분리수거 쓰레기통에도 어떻게 저기를 들어갔을까 싶은 곳까지도 빽빽하게 그려넣은 그래피티들. 공간만 있다면 어디든 그려넣은 그들의 그림은 이곳을 다른 골목들과는 다른 분위기로 만들었다. 자기들 스타일대로 그려넣은 낙서 혹은 그림들은 부조화지만 그 나름의 분위기를 만들어냈으니 이 작은 골목을 보기 위해 관광객이 찾아오는 까닭은 거기 있는 것이 아닐까.




누군가가 그리고 그 위에 또 그린 벽화는 몇 번이고 칠해지고 덧칠해져 골목을 찾을 때마다 다른 모습을 선보인다. 아쉬운 것은 내가 찾았을 때는 적어도 내 취향의 그림들이 많이 없었다는 것. 그림보단 너저분해 보이는 휘갈긴 낙서들이 더 많아서 더욱 골목이 짧게 느껴지기까지 했다. 그 낙서 위로 누군가의 그림이 또 덧씌워질 테지만.




어쨌든 이름난 명소이다 보니 이날도 웨딩 촬영 및 패션화보 촬영이 이루어지고 있었다. 사실 멜버른에서 그래피티가 그려진 벽면을 여기서만 볼 수 있는 것은 아닌데도 유난히 인기가 있는 것은 이 좁은 뒷골목의 분위기가 사진에서는 더욱 멋지게 느껴지기 때문일 듯. 한껏 분위기를 잡고 있는 신랑 신부가 익숙한 듯 아랑곳하지 않고 그림을 그리고 있는 어린 예술가가 흥미로웠다.




어린 예술가와 달리 관광객들은 좋은 풍경을 발견했다며 사진 찍어대기 바쁘다. 그리고 그 모습이 재미있는 나는 또 그들을 찍고. 이런 광경마저도 호시어레인에서 볼 수 있는 하나의 재미라면 재미. 




건물 밖에 세워 놓은 자전거와 오토바이도 나와 같은 관광객에겐 그저 좋은 피사체. 골목을 채우고 있는 작은 것 하나하나가 이 공간에 들어서는 순간부터 매우 특별한 것이 되는 것은 우리가 이 공간에 들어서면서부터 마법에 걸려서일지도 모른다. 쓰레기통 옆에서 소지섭 혹은 임수정처럼 쭈그려 앉고 사진을 찍어보는 그 순간까지도 말이다.




벽면 가득 그려진 그래피티가 유명한 맛집을 특유의 분위기 있는 곳으로 만들기도 하고. 그 창문 사이로 보이는 가게 안의 풍경이 들어가고 싶다고 느끼게 하는 그 생각마저도 호시어레인의 마법이다.




뒷골목의 마법은 드라마의 주인공으로 만든다. 널브러진 쓰레기통과 그곳에서 나는 지린내도 아랑곳하지 않고 골목 곳곳을 돌아다니며 즐기게 하는 마법은 이 좁은 골목에서 한 편의 드라마를 찍게 한다. 냄새가 나는데도 그 옆에 쭈그려 앉아 보기도 하고, 벽에 기대서 사진도 찍어보고. 드라마만큼의 멋진 풍경도, 아름다운 로맨스도 없지만, 이쯤 되면 드라마가 뒷골목에 환상을 만든 것인지, 골목의 분위기가 드라마의 주인공으로 만드는 것인지 알 수 없게 된다.


소지섭을 만나지 못하더라도, 임수정과 함께 쓰레기통 옆에 숨지 못해도 어떤가.
이곳에 온 이상 내가 주인공인데. 호시어레인은 그런 곳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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