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그날 알토나 비치에서 책을 읽었다

반응형



멜버른으로 오고 나서 아쉬운 건 근처에 멋진 바다가 없다는 사실이었다.
브리즈번에는 '골드코스트'나 '누사'와 같은 휴양지로도 손꼽히는 멋진 바다가 있어 아쉬움을 달래주었는데
멜버른은 바다 옆에 있지만, 그건 바다라기보다는.....이란 느낌이었던지라 늘 무언가 빠진 기분이었던 것.
그러다가 찾아낸 곳이 바로 알토나 비치(Altona Pier)다. 

'노을지는 바닷가 풍경이 보고 싶어'라는 마음으로 구글맵을 뒤지다 이곳을 찾아낸 것.
(관련글 : 호주에서 해가지는 방향은 동쪽? 서쪽? http://sinnanjyou.tistory.com/158)




오랜만에 호텔일도 쉬고. 집에서 무얼하리 그냥 나가보자라고 온 곳인데 역시 옳은 선택이었다.
날씨마저도 행복하다고 느껴지는 그런 날, 우리만큼 여유로운 사람들도 제법 찾았다.




다음엔 정말 낚시대라도 사서 어설프게라도 낚시를 해 봐야겠다.
생선이 잡히기라도 하는건지 아님 그저 바다를 바라보는 그 시간이 좋은것인지.
낚시대를 걸쳐놓고 그들은 한참을 그 자리에 앉아 있었고 나는 그들의 여유가 나른하게 기분좋은 그런 날이었다.




호주는 가족과 함께하는 시간이 많은 것 같다는 말은 호주에서의 생활을 다룬 포스팅에는 거의 빠지지 않는다.
그들의 여유는 어디에서부터 나오는걸까 궁금했다. 정말. 

이 넓은 대자연이 그들에게 하사한 것인지, 호주라는 나라가 가진 사회제도에서 나오는 것인지
어디서 시작되는 지 알 수 없는 '여유'라는 이름의 부러움은 어딜 가도 빠지지 않으니,
한국에서의 꾸준히 빠트리지 않고 안부 전화를 하는 것외엔 가족과 함께하는 여유가 없던 날들이
이곳에 와서 자꾸 생각나게 되는 건 어쩔 수가 없는 일이다.





흐음. 그렇게 바빴던 날을 다시 한번 머리속으로 곱씹고 바다를 좀 더 둘러보기 시작했다.
저 멀리 멜번 시티가 눈에 들어왔다. 날씨가 좋은 날이라 제법 선명하게 보이는 모양.
알토나 비치는 좀 신기한 것이 조금만 걸어도 다른 느낌의 바다가 나온다는 것인데 이쪽은 돌이 많았다.




그리고 이쪽은 모래가 많았고.
물의 깊이에 따라서 그리고 부유물에 따라서 다른 분위기를 자아내는 이 바다는 재미있었다.
지루함을 주지 않고 산책하는 맛을 준달까.
평소라면 한 곳에 앉아서 느긋하게 있을만도 한데 이번엔 이 달라지는 바다가 재미나서 산책을 이어갔다.




바다를 따라 자전거를 타도 좋고, 산책을 해도 좋은 도로가 이어진다. 
시간이 오후로 향하면서 햇살은 살을 태울 듯 뜨겁게 내리쬐는데도 호주 사람들은 여전히 액티비티를 즐긴다.
그늘 아래에서 잠시 쉬어가는 나와는 달리 익숙한 듯 야외 활동을 하는 그들을 보고 있으면
타는 것따위는 두렵지 않을 것일까 궁금해진다. 
호주는 피부암 1위 국가이기도 하고 국가에서 선탠을 자제하라고 말하기도 하는데 말이다.




주변을 둘러보다 보면 개를 찾는 전단을 제법 보게되는 데
반려견들이 놀기에도 좋은 곳이다보니 함께 산책을 나왔다가 잃어버리는 경우가 많은 모양이다.
전단의 내용을 읽다보면 주인의 절절한 마음이 느껴져서 제발 찾았으면 좋겠다란 바람을 싣게 된다.
코비야 넌 어디에 있는거니?




그렇게 또 하염없이 걷다보면 만나게 되는 작은 놀이터가 있는 공터. 
오랜만이란 느낌으로 시소도 타고 그네도 타봤는데, 이상하게 이게 은근 무섭게 느껴졌다.
나보다 훨씬 어린 아이들도 신나서 노는데, 공중으로 붕 뜨는 순간 식은땀이 흐르는 기분.
그 시절엔 어떻게 이걸 타고 놀았는지 알 수 없는 일이다.




산책을 마치고 허기진 배를 잡고 알토나 바로 옆에 있는 공원으로 향했다.
대부분의 호주 공원에는 바베큐를 할 수 있는 곳이 마련되어 있기에 오늘의 점심은 간단한 바베큐를 하기로 했다.
집에서 챙겨 온 고기와 야채를 꺼내들고 커다란 나무 벤치 아래에 앉아 간단한 고기 식사(?)를 즐겼다.
살랑살랑 흔들리는 바람에 이글이글 굽혀가는 고기냄새가 오늘의 짧은 여행을 최고조로 이끄는 기분이었다.




밥을 먹고 나자 오후 햇살이 한층 더 강렬해져 차로 피신할 수 밖에 없었다.
에어컨을 틀어놓고 다리를 척 올려놓고 읽으려고 맘 먹었던 책을 꺼내 읽으니 어찌나 좋은지.
한국에서 친한 선배가 보내 준 이 책은 오랜만에 읽는 일본 소설로
군더더기 없이 딱딱 떨어지는 문체가 술술 읽히는 맛이 있어 오늘 날씨에 절묘하게 어울린다는 생각이 들었다.
여유롭게 보내는 이와같은 하루가 참 소중한 워킹홀리데이의 끝자락, 더 부지런히 즐겨봐야겠다고 생각했다.



반응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