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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이 미처 알지 못한 와카야마를 발견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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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이 미처 알지 못한 와카야마를 발견하다
일본 와카야마현을 찾아가 문을 두드리다. 똑.똑.


와카야마和歌山. 그 이름 참 낯설다.
오사카로 대표되는 간사이 지역이라고 하더라도 교토와 나라, 고베도 아닌 그 이름 와카야마.
서점에 가서 가이드북을 살펴보더라도 이 지역에 대한 안내는 보기 어렵고 인터넷 검색으로 얻는 정보도 한정적이기만 하다.
이번 일본여행의 중심이 와카야마현이 된 것은 그런 연유에서다. 너무 낯설어 생겨나는 궁금증.
궁금증을 들고서 일본 와카야마로 찾아가 문을 두드렸다. 똑똑.

두드린 문이 이윽고 열리더니 그렇게 와카야마가 나를 반겨주었다.
2일간의 짧은 만남, 그리고 그 속에서 발견한 일본 와카야마가 알려 준 몇 가지 이야기.



이야기 하나, 파도는 천장의 다다미를 쌓았지만..

▲ 면적이 다다미 1,000장을 깐 것과 같다 하여 붙여진 이름, 센조지키


옛이야기를 꺼내보자. 파도가 열심히 돌을 깎아 아주 멋진 경승지를 만들었고 관광지로 손꼽히는 곳이 되었다.
그렇다면 직접 찾아가 두 눈으로 확인을 해봐야지. 그게 지금부터 이야기할 센조지키千畳敷다.

처음에는 파도가 맞부딪히는 벽이 겹겹이 쌓인 느낌이라 그게 다다미를 의미해 센조지키란 이름이 붙었나 했더니
여기서 말한 다다미 천장을 깔 수 있는 정도의 면적을 의미한다. 어쩐지, 그리 높지 않더라니.
(생각보다 높지 않아 실망한 사람들이 몇몇 있지 않을까 짐작해본다.)



▲지금 바라보고 있는 바다가 태평양이라니!

파도의 침식작용으로 만들어 낸 바닷가 지형이야 어딜 가도 있기 마련이겠지만, 센조지키에 관한 이야기가 하나 더 있다.
가이드북에 실리지 않은 이 지형이 만들어 낸 또 하나의 특징, 바로 '낙서'다.



▲ 켄타와 아이고는 내 손에 잡히면 혼난다!


동전으로 긁어도 쉽게 긁혀지는 돌이다 보니 많은 사람이 이곳을 찾아 여기저기에 낙서해놨다.
이곳의 조례에 따르면 자연환경을 훼손하면 10만엔의 벌금을 물지만, 그걸 적용하는 것이 쉬운 일이 아니고
낙서를 지우기 위해 드는 비용도 어마어마해서 그저 자연적으로 지워지길 지켜볼 수밖에 없는 노릇이라고 한다.
이곳에 얼마나 영원한 사랑을 맹세하고 얼마나 즐거운 추억을 남겨놓을지 모르겠지만,
엄연히 파도와 바람이 시간 들여 만들어 놓은 조각품에 대충 긁어대는 행동은 참 너무하기만 하다.



이야기 둘, 낚시꾼 최고의 스팟이 관광지?

▲ 이름에 관련된 이야기는 여러가지인데 설명하자면 하루가 갈지도?!

▲ 곧 저 절벽 안의 동굴에서 바다를 마주하게 된다


"그러니까 어째서 삼단이라구요?"
삼단베키三段壁에서는 관리하는 분에게 이런저런 이야기를 들으면서도 이해가 안 되는 부분이 많아 몇 번이고 물었다.
저 멀리 바다를 바라보는 단檀이라는 의미의 일본어 '見檀'에서 유래해 동음이의어 삼단(三檀)이라 삼단베키라는 이야기에서부터
파도가 높고 세기 때문인지 자살하는 사람도 많아서 '생명의 전화'가 있다는 이야기까지. 
(삼단베키가 의외로 자살의 명소로 유명할 줄이야..)



▲ 동그라미 속 아저씨가 갑자기 등장해서 놀랐다.


한참을 그렇게 이야기를 들으며 좋은 날씨 아래의 삼단베키를 감상하고 있을 때였다. 
갑자기 나무펜스 아래에서 노란 양동이가 올라오더니 곧이어 사람 손이 턱. (
이것은 대낮부터 무슨 호러 영화인가 했다.)
끄응차 소리를 내며 아저씨 한 분이 올라와 깜짝 놀라는 것도 잠깐 관리인 아저씨는 많이 잡았느냐며 말을 건넨다.



▲ 많은 고기를 잡고 즐거운 마음으로 돌아가는 저 늠름한 뒷모습


아저씨가 자랑스럽게 보여주는 노란 통을 보니 제법 큰 물고기가 여러 마리. 이렇게 큰 물고기가 잡힌다니.
문득 이렇게 물고기 잡아도 되는 건가? 근데 이 아저씨는 어느 길로 올라온 거지.. 그런 의문이 절로 생겼다.
참 재미난 사실은 낚시꾼이 자기만의 통로가 있고 벼랑 끝에서 물고기를 잡아도 그것이 불법이 아니란 사실.
(자격이 있어야 하고 잡는 물고기의 크기까지 규정되어 있는 호주와 비교하니 놀랍기만 한 부분이었다.)

이곳에 물고기가 잘 잡히느냐는 나의 질문에 관리인 아저씨가 웃으면서 말했다.
"이곳에는 환상의 고기가 잡힌다는 말이 있어요."

낚시대를 사와야겠구나.



이야기 셋, 나이아가라 폭포 못지않은 볼거리?!

▲ 일몰 시간 때 구경하면 멋진 사진을 찍을 수도!


삼단베키는 볼거리가 별로 없을 거라고 생각한 것과 달리 꽤 흥미로운 곳이었다.
개인의 취향이라고 한다면 할 수도 있겠지만, 낚시꾼 아저씨도 그렇고 이 동굴도 그렇고 재미나기만 했다.
이 동굴은 절벽처럼 보이던 삼단베키의 아래에 있는 곳인데 12층 높이인 지하로 엘리베이터를 타고 내려가야 볼 수 있다.

참고로 이 엘리베이터는 특별주문해서 만든 것이라며 관리인 아저씨가 굉장히 뿌듯하게 이야기를 해주셨기에
나도 뿌듯하게 설명하고 넘어간다. 기억하자, 특별주문이다.



▲ 일몰 시간 때 구경하면 멋진 사진을 찍을수도!


엘리베이터를 타고 내려가기에 전에 놓치지 말아야 할 곳이 바로 이 뚫린 구멍 사이로 보이는 태평양이다.
십상암이라고 불리는 거대한 바위산의 모습이 눈에 들어오는 것도 멋지지만, 역시 파란 하늘과 바다가 그림 같은 절경.
옛날 어느 문헌에 갑자기 배가 사라졌다 한 것에서 수군水軍이 이곳에 숨어있지 않을까란 추측을 했다고 하는데
정말 그들이 이곳에 있었다면 매번 이곳에서 바다를 관찰하고 있지 않았을까 싶다.



▲ 직접 보는 건 영상보다 훨씬 박력이 넘친다는 사실!


그리고 삼단베키 동굴에서 내가 가장 감탄한 것이 바로 세차게 몇 번이고 들어왔다 나가는 파도였다.
조그맣게 뚫린 구멍 역시 파도가 만들어 낸 것이고, 그 사이로 몇 번이고 치는 파도는 동굴을 쩌렁쩌렁 울리면서 박력 그 자체다.
6~7번 잔잔한 파도가 왔다간 후 큰 파도가 한번 몰아치는데 그 리듬에 맞추어 카메라를 들고서 기다리는 재미란.

막상 파도를 제대로 찍어보겠다고 그 앞에 섰지만, 동굴을 울리는 소리와 튕겨오는 물방울에 나도 모르게 뒤로 물러났다.
어디선가 느껴본 적 있는 이 느낌은 캐나다의 나이아가라 폭포가 떨어지는 곳에서 섰던 그 순간과 닮았다.
자연은 이렇게 위협적이면서도 매력적이다.



이야기 넷, 백사장의 정체는 수입산?!

▲ 진짜 와이키키 해변도 이런 모습이려나?


와카야마에서 빠질 수 없는 곳이 일본에서도 보기 드문 하얀 모래가 깔린 시라라하마白良浜다.
여름엔 많은 사람들이 찾는 명소로 기무라타쿠야 주연의 '굿럿Goodluck'의 마지막 장면에 하와이로 묘사될 정도로 
와이키키해변과 닮아 '일본의 와이키키'라고 불리기도 하는데 재미난 사실은 이 하얀 모래에는 호주산 모래가 섞여 있다는 것!

파도에 의해 모래가 자꾸 유실되면서 백사장의 유지가 어려워진 것이 그 이유인데
모래를 구해 메꾸어 넣으려고 해도 하얀 모래가 드물다 보니 일본이 아닌 호주에서 가지고 올 수밖에 없었던 것.
수입산이라니 조금 재미있는 사실이기도 하지만, 이렇게 예쁜 해변을 유지하게 되었다는 면에서는 다행이기도.



▲ 구멍이 뚫린 돌덩어리 같아 보여도 엄연한 '섬'


이 하얀 해변에서 차로 조금만 이동하면 또 하나의 관광명소, 일몰 때 찾아오면 장관을 볼 수 있다는 엔게츠도円月道가 나온다. 
실제 이름은 따로 있음에도 중간에 뻥 뚫린 구멍이 보름달을 닮았다 하여 본 이름보다 별명으로 더 유명한 이곳은
일몰 때 구멍 사이로 딱 해가 떨어지는 순간을 포착하는 게 가장 멋지다고 하는데 아쉽게도 너무 대낮에 가서 보지 못했다.
다음에 기회가 된다면 그땐 꼭 순간을 포착해낼 수 있게 되길!



이야기 다섯, 매실 장아찌통에서 뜨끈한 온천욕


아마 첫 사진에 낚인 남자분(?)들이 좀 있으리라 짐작도 해본다.
중간중간 내가 한 이야기들은 바로 스크랩을 내리고 빨리 메인 사진의 여자분들을 찾아야 한다고 생각했을지도?!
아쉬워라. 기대했던 장면은 더 이상 나오지 않을 텐데 말이다. ^^; 

실제로 일본에서 온천에 들어갈 땐 수건을 두르거나 할 수 없다. 보통은 몸만 들어가는 것이 당연한 원칙이기에
이 포스팅에 사용한 사진은 연출된 컷이므로 실제로 온천을 방문하게 된다면 주의하길.
어쨌든 이제부터 가장 흥미로울 온천 이야기를 풀어내 볼까 한다. 앞서 말한 매실 장아찌통의 비밀 말이다.



▲ 창밖으로도 충분히 바다는 보이지만 그래도 아쉽다고 느껴진다면?


와카야마를 머물면서 바다를 보며 온천을 볼 수 있다는 사실만큼 귀 쫑긋해지는 이야기도 없었다.
온천이야 일본 곳곳에도 있지만, 바다를 바라보면서 온천욕을 즐길 수 있는 곳은 그렇게 흔하지 않기 때문이다.

온천의 효능이야 뜨거운 물에 들어가 자기도 모르게 으뜨뜨뜨...캬~하고 소리를 뱉어본 사람이라면 충분히 알만도 하고.
바다를 바라보면서 멋진 풍경에 절로 나오는 콧노래를 흥얼거리기도 한다면 이것이야말로 천국이 따로 없을 터.
그런데 여기 또 하나 재미난 사실이 있으니, 와카야마의 온천통은 원래 매실장아찌(梅干우메보시)를 담그던 용이었다는 것이다.



▲ 바닷바람을 그대로 느끼며 하는 노천 온천이야 말로 최고!

▲ 운이 좋을 땐 최고의 하늘과 바다를 만나기도 한다


그렇다고 몸에서 쉰내(?)라도 날까 급하게 통에서 나올 필요는 없다. 이건 꽤 오래 시간이 지난 것들이니까.

그러니까 이야기는 거슬러 올라가 18세기 초로 향한다.
8대 쇼군에 오른 도쿠가와 요시무네가 금의환향하며 고향으로 돌아와선 온천욕이 하고 싶어져 부하들에게 명령을 내린다.
그러나 따뜻한 온천물을 담을 무언가가 마땅찮아 그의 부하들은 욕조를 찾아 헤매는데.. 그러다가 발견한 것이!
이 지역의 특산물인 매실로 장아찌를 담글 때 쓰는 커다란 통이었던 것. 그렇게 그는 온천욕을 아주 즐기게 되었다.

예나 지금이나 윗사람의 명령을 따르기 위해 부단히도 노력한 이들이 있었다는 교훈(?)과는 별개로
어쨌든 이 지역의 온천에는 매실 장아찌통으로 된 노천온천이 상당히 많고 효능도 좋다.



이야기 여섯, 아직 더 남은 이야기

▲ 빛내림이 멋진 오후의 하늘


그 누군가는 와카야마의 해변을 보면서 주상절리를 떠올리기도 하고 태종대를 떠올리기도 한다.
그런 자연적인 면모가 한국의 어느 곳과 비슷하다는 느낌도 받는 와카야마. 

실제로 제주도와 자매결연 도시로 제주도의 돌하루방을 기증하는 재미난 이벤트가 벌어지기도 했고
임진왜란 때 조선의 문물에 감동해 귀순한 장수 김충선(일본이름 사야가)의 기념비가 있기도 하다.
(일본 입장에서는 배신인지라 NHK에서 그에 대한 다큐멘터리가 방영되었을 때 많은 일본인이 놀랐다고 한다.)
거기에 와카야마의 한 고교는 한국 식민 지배에 대한 사과의 의미로 39년째 배를 타고 한국에 수학여행을 오고 있는,
생각보다 더 한국과 많은 관계가 있었는데 그 이름을 잘 몰랐다니 조금 미안해질 노릇.


※관련 링크 : "한·일 바른역사 알고싶어요" 日 고교, 39년 한결같은 한국 수학여행(http://www.imaeil.com/sub_news/sub_news_view.php?news_id=20638&yy=2013)


▲ 수평선 너머로 해가 사라질 무렵엔 또 멋진 장관이 펼쳐진다


아마 와카야마는 이렇게 다양한 이야기를 들려주고 싶어서 조금 더 빨리 찾아와 주길 바랬을지도 모르겠지만,
다른 간사이 지역과 비교하면 소박하게만 느껴지는 이야기, 나에게만 즐거운 이야기가 될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와카야마가 좋았던 건 당신이 미처 알지 못한 와카야마를 발견했기 때문.

혹시나 이 글을 읽고 조금이라도 와카야마에 대한 궁금증이 생겨났다면,
낯선 이름의 이 작은 마을을 직접 찾아가 문을 두들겨 보라. 분명 이번엔 당신만이 알아낼 와카야마를 발견할 테니.
생각해보면 여행이란 건 그래서 재미있는 일이 아니던가.



[이번 여행은 하나투어 겟어바웃의 지원으로 쓰여진 2013년 9월 26일부터 30일까지의 여행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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