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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동묘지 앞 백팩커에서의 일주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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딸기농장의 시즌이 생각외로 빨리 끝나버리고 툼불에서의 쉐어생활도 끝나버린 시점. 우쿠와 나는 당분간 머물 집이 필요한 상황이 되어 버렸다. 쉐어하우스를 찾는 운은 제법 좋다고 자신했기에 이번에도 괜찮은 집이 나오지 않을까 하는 희망을 걸었는데, 검트리를 통해서 카불쳐에 있는 백패커를 찾아냈다. 

운 좋게 찾아냈던 우리의 첫 번째 쉐어하우스 : http://sinnanjyou.tistory.com/79




한가지 특이사항이 있다면, 집 바로 앞에 공동묘지가 있다는 것. cemetery라는 조금은 덜 으스스한 표현이 있긴 하나 결국엔 공동묘지다. 귀신 나오는 집이 아닐까 등의 별별 걱정을 하며 찾아갔던 것과 달리 집이 무척이나 괜찮았다.


 


괌에 있을법한 야자수가 반겨주는 집 The palms 21번지. 검트리에 올라온 글로는 이제 막 백패커 비즈니스를 시작했다는데, 사실 '백패커'에 대한 인상은 브리즈번 시티에 있는 틴빌리Tinbilly에서 한차례 경험했기에 걱정했던 것도 사실! 

브리즈번에서 만난 첫 숙소 백패커 틴빌리 : http://sinnanjyou.tistory.com/78




그러나 그런 우려는 저 멀리 던지게끔 해 주었던 것이 햇살 드는 정원의 하얀 테이블이었다고 하면 너무 운치 있는 말일까? 어쨌든 내가 생각했던 백패커의 이미지와는 전혀 다른 이 집은 백패커라기보다는 쉐어하우스같은 곳이었다.




특히 앞뜰과 뒤뜰, 옆뜰(?)까지 갖춘 넓은 정원은 이 집의 매력에 단번에 빠지게 한 이유다. 정원 곳곳에는 집주인 아줌마가 어디선가 들고왔는지 알 수 없는 다양한 물건들로 그 독특한 매력을 뽐내는데 그중에서도 부처님 흉상은 나름 컬쳐쇼크였다. ^^;;




그럼 집안은 어떨까. 지내면서 알게 된 것은 이 집은 정말 주인 아주머니의 손길이 많이 간 곳이라는 점이다. 직접 캐러밴을 고치고 있는 모습을 보면서 이 집의 인테리어도 다 아주머니의 손이 거친 것이라는 확신이 들었다. 




처음 집을 보러 왔을 때, 이 집 꼬맹이들이 연신 자랑하던 다양한 케이블 채널이 나오는 TV는 아쉽게도 돌아다니라 바빠서 그렇게 자주 보지는 못했고..

우쿠가 가르쳐주려고 했지만, 성격상 이런 머리 쓰는 게임을 극도로 피하는 나에게 멋진 체스판은 그저 하나의 전시품처럼 보이기도. 이걸 보면서 외국인 친구와 멋지게 차 한잔하면서 체스 두는 상상도 했으나 끝은 늘 체스판을 엎어버리는 모습으로 마무리. 흡사 내기 바둑 두는 할아버지들 마냥. ㅋ




거실 한편에 놓인 원서들 또한 그냥 패스. 아직 들고 있는 영어원서도 한 장을 채 못 넘겼기에 이 책들 또한 전시품으로.




부엌에 놓인 고풍스러운 느낌의 원탁 테이블은 자주 밥을 해 먹은 것은 아니지만 늘 먹을 때마다 외국이란 분위기를 잔뜩 느낄 수 있었던 아이템이다. 여기서 옆방에 살던 외국인 아저씨에게 한국 음식을 대접하기도 했고. 수납공간 가득하던 싱크대와 써보지 못한 오븐은 다시 봐도 마음에 든다.




이 부엌에서 먹은 것은 대부분이 소시지와 빵밖에 없었지만, 여기다가 딱 차려놓고 먹을 땐 이게 얼마나 반짝반짝하게 멋지던지. 이곳에서 나름 소소한 허세도 즐겨볼 수 있었다. ㅎㅎ




부엌 바로 옆에 있는 세탁실은 햇살이 잘 들어서 늘 오후만 되면 멋진 분위기를 자아냈다. 그게 좋아서 빨래하지 않아도 식탁에 앉아서 쳐다보기도 하고 사진을 찍기도 했다. 빨래를 한가득 끝내고 뒷 정원에 열고나면 바람에 살랑살랑 흔들리는 옷들에 여유로움을 느끼기도 하는 매력까지 갖춘 곳이 바로 이 집이다.




백패커라고 불리는 이 집은 4인실 방 두 개와 2인실 방 하나를 갖추었는데, 4인실은 한 명당 120달러, 2인실은 방으로 220달러로 고민할 필요도 없이 2인실을 사용하기로 했다.




4인실도 2인실도 비즈니스를 막 시작했기에 사실 사람이 가득 차 있지는 않았다. 일주일 동안 내가 본 사람은 딱 2명, 그것도 4인실을 각자 하나씩 꿰차고 1인실 같은 4인실을 사용하고 있었다. 우리모두가 참 운이 좋았던 거다.




2인실은 커다란 더블침대와 고풍스러운 서랍장이 덩그러니 있는 그다지 가구가 많이 없는 방이었지만 붙박이장이 매우 넓어 우리의 엄청난 짐을 다 집어넣을 수 있었다. 거기에 이 집 전체가 채광이 매우 좋아서 언제나 기분 좋은 햇살을 느낄 수 있다는 것이 장점 중의 장점! 아, 물론 그래서 더울 때도 있긴 했다. ^^;;




그리고 이곳의 또 하나의 마스코트인 멍멍이. 한번 만져볼라치면 소스라치게 놀라 도망을 가 버려서 결국 한번이라도 쓰다듬어주지는 못했지만, 인형처럼 생긴 이 녀석을 데리고 나보다 더 유창한 영어로 말을 걸어오는 집주인 꼬맹이들은 백패커의 또 하나 매력이었다.

갑자기 끝나버린 딸기 시즌으로 일주일 동안 이 좋은 백패커에서  할일 없이 보낸 백수생활. 넘어가는 오후의 햇살과 불어오던 시원한 바람, 정원에서 들리던 꼬맹이들의 조잘거리는 목소리.. 더없이 밋밋한 나의 하루 들을 예쁘게 채색해주던 이 집이 없었다면 카불쳐 생활은 얼마나 지루하고 또 지루했을까 싶다. 그리고 이곳을 마지막으로 나는 브리즈번을 떠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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